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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지역에 나치성향이 강한 이유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5-09-06 (일) 03:54 조회 : 1742
= 2015년 1월 독일에서는 1년에 3 만 명의 난민이 올것으로 예견했었다. 이 예측은 그간 몇 번 바뀌면서 10만, 30만, 80만 명을 넘어 이제는 연말까지 100 만 명의 난민이 몰릴것으로 예견한다. 예견이 빚나가듯 정부나 EU의 대책은 너무나 빈약하고 혼란스럽다.
8월 들어 독일에서는 난민수용 예정이던 숙소에 방화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이를 규탄하는 모임을 갖는 시민단체도 있었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나치들의 반 외국인 데모가 계속되어 왔다.  단순한 데모가 아니라 난민수용시설에 대한 방화사건이 계속 이어진 것이다. 나치 데모대들은 경찰과도 대치하여 폭력시위를 벌렸다.
금년 들어 나치들의 폭력행위는 양적으로 그리고 질적으로 점차 도가 심해졌다. 금년들어만도 정치성을 띈 폭력행위는 전국적으로 300 건에 달한다. 경찰이 수세에 밀릴정도로 과격한 폭력도 잦아졌다.
이렇게 몇일이 지나면서 돌연히 동독 주정부장관들의 발표가 주목을 끌었다. 그 내용인즉 지금 독일에 일고 있는 반외국인 폭력이 동독지역에만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독일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바이에른 주와 바덴뷔르템베르그 주에도 마찬가지가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주 장관들이 이런 사회분석을 발표한 것은 전례없는 일이다. 이런 행동은 일종의 자격지심의 발현으로 보인다.  정량적인 분석없이 본다면 이들의 주장이 거짓이 아니다. 그간 드물게 나타나던 테러사건이 서독에서 가장 부유한 이 두 지방에서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동독의 인구는 16% 인데 나치범죄율에서는 65%에 달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여기서 맞당히 동독지역에 나치범행률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발표와 동시에 해석도 따랐다.  동독인들은 지난 80 여년 간을 철저한 독재정권하에서 살아왔다.  이로 인해 동독인은 지금도 변화에 대한 공포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 주된 요인으로 지적되었다.
때를 같이 해서 베를린대학에서는 구 동독시대의 외국인 문제에 대한 연구보고가 있어 흥미를 끌었다.
이에 의하면 1980년대1500 명의 월남인이 동독기업에 노무자로 왔는데 이들의 업무능률이 좋아 동독노동자들과 알력이 생길 지경이었다는 것이다.  동독기업에서는 태만하고 일의 능률에는 관심이 없는 분위기였다. 
외국인들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4 x 5 미터 방에 침대 4개 , 옷장, 세면대가 하나 있는 숙소였다.  그런데도 외국인에 대한 동독인들의 반감은 커졌고 시민들의 요구로 월남인의 숙소를 줄여야 할 정도였다. 게다가 동독정권이 멸망하기 2,3 년 전부터 월남인들은 컴퓨터 사업을 시작하고 월남에 수출도 했다.
개인적인 상행위를 혐오하던 동독정권에는 이들의 물욕, 영업행위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컸으며 기생충같은 (parasitaere) 생활양식에 대해(당시 동독에서 사용한 어휘) 동독인의 눈에는 가시로 보았다는 것이다. 국가선전에는 외국인이 ‚동무‘였지만 이유없이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동독비밀경찰 서류에는 동독에서 있었던 반 외국인, 반 유대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놀랍게도 동독에 친 나치성향이 계속 유지되어 온데는 그 이유가 있었다.  그 뿌리를 보면 1947년 당시 소련 점령군은 군사 명령으로 나치범죄자에 대한 법적 청산작업을 중단하고 나치 장교 등 히틀러 밑에서 근무하던 요원들을 직접 동독 정권정당인 SED 당원으로 받아드린 것이다.  독재자 히틀러에 추종하던 중견간부들이 하루 아침에 공산당 간부로 탈바꿈을 했다. 지역에 따라 35%의 공산당원이 과거의 나치당원이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동독정권자에게 ‚나치란 서독에만 존재‘한다는 통념은 일상적인 선전문구에 속했다. 그리고 동독에 그 많은 나치추종자들이 동독정권의 요원으로 봉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끝까지 국가 일급 비밀사항으로 취급되어왔다. 
즉 서독에서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탈나치 운동은 동독에서는 아무도 접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근본요인의 배경으로 보는 것이다.  동독지역에 친 나치층이 강하다는 것은 표면화 된 사실이지만 이 델리케이트한 문제를 서독측에서는 아무도 거론한 적이 없었다.  다행이 이번에  동독 정계 스스로가 이 문제를 쟁점화 한것이다.  앞으로 더 논란을 겪어야 할 사안이다. 
역시 비밀경찰문서에 의하면 공산당중앙위원회 건물에는 1960년대 5년간에만도 30회에 걸쳐
친 나치 낙서사건이 있었으며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학교, 공장 등에서 이런 사건이 자주 벌어졌다. 동독인이 서독인에 비해 훨씬 더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하다는 내부문서도 있었다.

동독정권이 무너진 직후 사회주의 모범도시로 지정된 한 중소도시에서는 통일을 기뻐하기도 전에 반 외국인 테러가 발생했다. 폭력을 휘두르는 무리들에게 주위 시민들이 박수갈채를 보내는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전 세계를 경악감에 빠트렸다.
이때 동독수상이었던 호넥커는 ‚외국인에 대한 증오감은 독일인 멘탈리티에 박혀있다.  그러나 동독에서 이 문제는 극복되었다. 5월 노동절에는 세계 각국인과 피부색갈이 다른 국민들이 우애속에서 함께 행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라는 말을 던진적이 있다.  현실감각을 상실하고  환상과 착각으로 쌓인 모습이다.  독재국가의 권력층에 흔히 나타나는 징후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