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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York Times 에 실린 "한인회"기사를 보고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5-08-26 (수) 19:25 조회 : 1937
왜 기사화했을까 ?
최근 뉴욕타임스지에 뉴욕지역 한인회 조직을 중심으로한 알력이 상세히 기사화된  보도가 알려졌다.  두 개의 한인회가 있고 제 각기 한인회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단다. 
한인사회를 접해본 적이 없는 경우에는 충분히 가십꺼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에 있는 한인사회를 겪는 사람에게는 전혀 새로운 일도 아니고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일도 아닐 것이다.
일단 얼마나 기사꺼리가 없으면 이런 글을 올리나 하고 비웃음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을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미국에는 전 세계 국민이 자기나름대로 고향친구들의 모임을 갖고 있겠지만 이들의 단체생활가운데 유독 한인회만이 어처구니없는 진풍경을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세계인을 상대로 하는 기자들은 충분히 기사로서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한가지 우리의 관심사는 이 한국인의 행동양태가 동양인에게 공통적인 것인가 하는 점이다.  독일에서 유교권 출신 국민의 생활을 관찰할때 얻는 결론은 놀랍게도 이러한 국민성은 한국인 특유의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독일에 거주하는 일본인이나 중국인들의 단체생활상을 보자.  이들은 놀랍게도 우리와는 전혀 다른 생활패턴을 갖는다.
 중국인들은 고향에 따라 혹은 직업에 따라 친선모임을 갖는다.  천안문사태 이전에 독일에 왔던 유학생이 반정부 단체를 유지해 왔었다.  그러나 정부의 와해공작도 있고 천안문사태 후에는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이 학생은 교민을 위한 언론인으로 변신하여 살고 있다.
 근래에는 중국의 경제력이  증대하면서 주로 경제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하는 모임은 프랑크푸르트 지역에만 10 여개가 넘게 증가했다.
그런데 이들 단체의 조직과 성격을 보건대 우리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중국인 교민사회에는 우리의 고정관념속에 해외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존재라고  인식하는 ‚한인회‘와 유사한 성격을 갖는 단체는 하나도 없다.  중국은 독재국로서 재외국민을 감시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겠는데도 아직 ‚한인회‘의 위력을 깨단지 못하는 후진성을 보이는 것은 아닌가.  중국단체는  모두가 현실적이며 실무적인 모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인들은 원래가 어설픈 단체생활은 아예 염두에 없다. 완전 독불장군으로 생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독협회에 대해 일본인은 거의 무관심한체 오히려 친일적인 독일인사들의 모임으로 유지되어가는 경우가 많다. 
유교권의 대표적인 이 세 나라에서도 이와같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뉴욕타임스 기사가 있은 후에도  해외교포사이에는 놀랍거나 수치스럽게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전 세계에 있는 한인회마다  특히 규모가 큰 지역일수록 유사한 형태의 분란이 일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뿐더러 ‚한인회‘를 즐기는 우리에게는  이 기사내용에 대한 거부감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특성
뉴욕타임스 가 기사화했다는 사실을 보아도 우리는 한국인만이 간직하고 있는 특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의 관습이  뉴욕의 다른 민족에게서 나타나는 행태라면 특종기사로서는 가치는 없는 것이다.
여기서 우선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유교권에서도 한국인에게만 특별히 강력하게 나타나는 특성을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한국적 특성으로 학자들은  권위와 감투지향의식,  계층의식, 파벌형성, 권력집착  등을  꼽는다.  물론 이 밖에도 한국사회를 반영하여 온  특성이 있지만 위에서는 각별히  해외생활에서 뚜렷하게 부각된다고 생각되는 특성을 기록하였다.
이러한 특성이 한국적이며 유교적인 전통이 지배하는 국가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겠지만  흥미로운 것은 한국, 일본, 중국인을 비교할 때 한국인이 가장 유교적 생활양식과 관습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마치 유럽에서는 스위스인이 독일인보다 더욱 ‚독일적‘이라는 사실과 일맥상통하는 점을 찾아볼 수 있을 것같다.
 
한국인의 특성은 해외생활에서 극명하게드러난다
외국생활 의 특징가운데 하나는 해외생활이 우리에게  단조롭게 반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대화내용이나  우리의 의식세계는 더욱 적라라한 모습으로 표출된다.  즉 우리의 의식세계에 은폐되어 있는 심성이 여과없이 표면화되면서 대인관계에서 이로 인해 알력이 일게 되는 원인이 되곤 한다.  한국에서처럼 자신을 숨겨가며  대상자의 배후를 캐내야 하는 이중적인 작태가 불필요한 것이다. 
위에서 한국인은 어디 가나 ‚한인회‘를 즐긴다는 예를 들었다.  이 뿌리를 캔다면 역시 외국생활의 단순함에 연유되면서 여기에  감투지향의식, 권력집착, 권위의식  등이 복잡하게 얽힌 데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해외에서 한국적 특성을 더욱 뚜렷하게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  최근 한국을 다녀온 분의 느낌이다.  그가 체험한 학계 모임에서 보니 모두가 자기자랑 – 자기선전은 불필요한 자리였다 – 을 지나치게 하는 것이 매우 기이하게 느껴졌다는 것이었다.  이 장소는  ‘나의 권위를 이용하여 수직사회에 알맞는 서열매김을 위한 투쟁장소‘라는 것이 그의 평가였다.  독일사회와는 너무나 격이 다른 사회라는 생각이다.
한인사회에서는 간혹 한인사회와의 접촉을 피하려는 성향을 한 동포들이 있다.  바로 위에 지적한 분위기를 혐오한다는 것이 주원인이다.  대상자의 출신지, 학교, 나이, 지인관계 등을 확인하고 내가 설 자리 즉 상대방과의 관계정립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경우야 말로 계층의식 뿐이 아니라 권위의식, 감투지향 등 특징적인  한국인의 총체적 본태를  드러내는 정황이 다. 
문화사회적 특성은 일상언어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우리 말에 복잡하게 나타나는 호칭은 전형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상하계층으로 분류되는 사회에서 언어에도 여러 단계로 분류되는호칭 20 여 종류가  생겨났다는 사실을 새삼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한 민족이 보유하고 있는 본능적인 국민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한 행위이다.  뉴욕타임스지는 한국인의 본성을 도마위에 올려 놓은 것은 아니다. 단지 이해할 수 없는 웃음꺼리로 소개했을 뿐이다.
앞으로도 전 세계 한인회나 각종 단체들은 크고 작은 희극의 줄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 바랄 수 있다면 우리의 넋을 받아드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