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 현재접속자 (3) | 최근게시물
로그인 | 회원가입



총 게시물 73건, 최근 0 건
   

한 독재자의 최후

글쓴이 : 유럽리포트 날짜 : 2014-03-11 (화) 06:13 조회 : 3120
유럽에서 또 하나의 독재자가 사라졌다. 앞으로 그의 운명에 대해 예측할 수 없겠지만 독재자들에게는 한가지 공통적인 오류가 있다. 그것은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는 나의 권력은 영원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착각일 것이다.
과거 동유럽 공산국가의 독재자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독재자들의 최후는 제각기 다른 비참한 모습을 보였다. 그중에도 가장 극적이며 상징적인 독재자의 마지막 장면을 보인것은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체스쿠(Ceausescu)였다.
그는 자기의 호칭을 ‚지상의 神‘이라고 정한 인물이다. 그만큼 자신감과 오만이 가득한 인물이었다. 다른 공산국가가 소련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비해 그는 유연성있게 정치노선을 이끌어 나가면서 대외적으로는 내적 모순을 숨기고 대내적으로는 마음껏 자신의 독재성을 향락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했다. 그러나 모든 공산국가가 그랬듯이 실제 경제는 황폐화되어가고 있었으며 그럴수록 그의 무자비한 독재정책은 잔인해갔다..
이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영향력이 있는 자는 정권에 아부하며 결탁해 나가야 했다. 비밀경찰에는 수 만명의 정직원이 있었으며 대국민 정보수집을 위해 100 만명이 넘는 요원을 거느리는 거대한 기관을 거느렸다. 공산당원은 360 만 명으로 당은 출세를 위한 첫걸음이 된다.
이와 같이 빈틈없는 감시망을 이룬 루마니아에서 반 체재 단체나 움직임이란 상상할 수도 없었다. 폴란드나 헝가리, 첵코, 동독 등 기타 공산국가에서는 종교단체나 노조를 중심으로 한 반정부 움직임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사실과는 대조적이다 
 따라서 공산권 패망 후 역사청산작업은 10년이 지난 1999년에야 미미하게 시작이 된 셈이다. 이 10년 동안 국가기관은 과거 공산권의 권력층이 그대로 물려받았다. 이 새로운 권력층은 자신의 과거범법행위를 방증할 수 있는 증거물은 완벽하게 파기할 수 있었다. 그나마 진정한 과거청산은  루마니아의 eu 가입을 앞두고 eu의 압력에 의해 시작된 셈이다.
차우체스쿠 시대 수 십만명이 학살되었다는 구석기시대적 공산주의는 이렇게 흔적없는 역사의 단면이 되었다.
루마니아 최후의 날이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끄는 것은 극적인 장면을 연상케 하는 ‚차우체스크‘의 마지막 순간이 알려진 때문이다. 1989년 11월말과 12월에 걸쳐 벌어진 사건이다.               
다른 동구공산국가에서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것과는 사뭇 달랐다. 루마니아는 말할 수 없는 혼란속으로 빠져갔다.  11월 말에는 3000 명의 열성당원이 친정부 시위를 벌이고 12월 초에는 1100 명이 살해되는 반정부시위가 벌어지는 혼란으로 이어졌으나 누가 누구에게 총격을 가한 것인지 오늘까지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차우체스크는 굶주리며 추위에 떨고 있는 국민이나 급변하는 주변정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머지막 순간까지 ‚미래의 루마니아에는 황금시대가 올것이다‘라는 허황된 푸념을 늘어 놓았다.
12월 21일에는 10만 군중이 그의 퇴진과 자유선거를 요구하는 시위가 있었다. 차우체스쿠는 이에 대비해서 자기가 신임하는 친위대 열성당원을 동원해 시내 중심지에서 친정부 시위를 열었다. 
그는 이 대회장 연설에서 파격적인 노동임금과 연금인상을 시행한다는 내용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지구상의 신‘의 시대는 기울어가고 있었다. 열광하며 권력에 매달리던 수 일 전과는 달리 이 열성당원들이 동요하며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당에 대한 충성을 목숨처럼 아끼던 이 열성당원들은 생방송이 보이는 가운데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21일과 22일에는 수도에서 시가전이 벌어졌다.  비밀경찰, 각종 군부대, 특수부대, 경찰 등이 참여한 혼란 그대로였다. 이 혼란속에서 국방장관은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었고 새로 임명된 국방장관은 차우체스쿠의 도피를 준비하고 있었다. 분노한 시민들이 공산당 당사를 습격하는 동안 차우체스쿠는 당사 뒷편에서 헬리콥터로 도피하는데 성공했다. 조종사와 두 명의 경호원 그리고 당수 부부가 타고 있었다.
그러나 조종사는 자기 살 길을 찾아야 했다. 40 km 를 비행한 조종사는 엔진고장이라는 구실로  홀로 이탈했다. 그러자 경호원 두 명도 주인을 버리고 도주했고 지나던 차량이 차우체스쿠 부부를 태우고 근처 농산물 판매장에 내려 놓았다. 여기서 곧 민병대에 신고하여 구속됨으로서 25년간의 혹독한 독재를 매듭짓는 순간이 되었다.
그런데 불과 2-3일 사이에 새로 정권을 잡은 장군은 차우체스쿠가 가장 아끼던 장군이었으며 그는 간이 군사재판을 열수 있는 준비를 마추고 있었다. 장소는 어떤 뒷 마당에 있는 작은 창고속이었다.
두 피고인에게는 ‚폭군으로 국민을 폭압하여 파멸로 몰아 넣었다‘는 죄명으로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피고인은 마지막 순간에도 자기는 ‚루마니아인이 지구상 누구보다도 부유하게 살게 했다‘고 주장함으로서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전형적 폭군의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같은 자리에서 곧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 모든 절차는 불과 40분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 소식이 시내에 알려지자 시민들은 축제분위기에 들떴다.
 독재자 부부가 총살되어 쓰러져 있는 모습을 상세히 보도한 장면은 전 세계에 소개된 흥미꺼리 보도자료였다. 아마 이들이 잔악한 독재자가 아니었던들 시신을 해부하듯 묘사한 이 보도를 즐긴 시민은 그리 흔치 않았을 것이다.
독재자가 사라진 후에도 시가전은 여러 날 계속되었다. 정권에 매달려 모든 이권을 누려온 다양한 그룹들간에 벌어진 파벌싸움이었다. 25년간 특권을 누리던 이들 권력층은 이제 새로운 양태의 특권을 누리는 계층형성에 성공한 무리들이다.  ##

[이 게시물은 유럽리포트님에 의해 2014-04-15 16:47:00 Home 홈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유럽리포트님에 의해 2014-05-13 05:53:06 최신기사에서 복사 됨]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17-02-05 00:10:09 포럼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