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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4-11-23 (일) 06:42 조회 : 3542
기자(記者)? 많고 많은 직업 가운데 ‘놈 자(者)’자를 쓰는 직업은 기
자뿐인 것 같다.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씨가 당선된 후 그를
‘당선인’으로 부르기 시작하더니, 금방 ‘당선인’이라는 말이 고정화됐
다. 그 전에는 ‘당선자’라고 했었는데. 헌법 67조는 다수표를 얻은 사
람을 ‘당선자’로 표현하고 있으니, 법적인 용어는 ‘당선자’임이 분명하
다. 그런데도 ‘당선인’으로 부르는 것은, ‘놈(者)’보다는 ‘사람(人)’이 낫
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런 ‘놈 자(者)’를 직업명으로 붙이고 오늘
도 기록을 해나가고 있는 이들이 나와 같은 기자들이다.
‘스승 사(師)’자를 붙인 의사(醫師), 기술을 다루는 사람인데도 ‘선비
사(士)’자를 붙인 기사(技士)식으로 자기가 하는 것을 높이려고 하는
세상인데, 높임의 뉘앙스가 전혀 없는 ‘기자’를 직업명으로 갖게 된 것
은 공정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은 물론이고 나로부터도 존대 받
지 말라, 그것이 기록하는 이들의 숙명이다’ 누군가가 이런 생각을 하고
기자라는 직업명을 지었다고 생각해본다.
이런 의식을 갖고 있다 보니 자기 존대를 하거나 남을 높여 놓은 글
을 보면 반발심이 일어난다. 이런 반발은 기자들만 하지 않는다. 거
의 모두가 한다. 우리 사회에서 회고록이 주목받지 못하는 것은 회고
록을 쓴 이의 지나친 자기 존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이 쓴 전기
도 인기가 없는 것은 그를 성웅화(聖雄化)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2014년 여름) 한국에서 영화 ‘명량’이 대인기를 끈 것은, 똑같은 오욕
칠정을 갖고 있음에도 자기를 극복해간 사람 이순신을 그려냈기 때문
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임진 씨를 잘 알지 못한다. 동시대에 한국에서 대학을 다녔다는
것 외에는 별로 일치하는 영역도 없는 것 같다. 그런데도 그를 알게 된
것은 과거에 썼던 내 기사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들이 보내준 많은 책
을 받는데, 그중 하나가 임익순을 저자로 한 회고록 『내 심장의 파편』
이었다. 읽어야 하는 것이 많은 나는 꼭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면 읽지
않으려고 하는데, 우연히 그 책을 들었다가 한숨에 읽어갔다.
그리고 1942년 맥아더를 대신해 필리핀 주둔 미군을 지휘하다 일본
군에 항복한 웨인라이트 중장과 1950년 한국전에서 길을 잃고 헤매
다 8월 25일 인민군에게 항복한 미 24사단장 윌리엄 딘 소장을 떠올
렸다. 미군의 중장과 소장이 적에 항복했으면, 6•25전쟁 때 우리 군
에서도 많은 지휘관들이 인민군에 항복했을 것 같은데, 그에 대한 이
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임익순은 『내 심장의 파편』에서
대령 시절 인민군에 항복해 잡혀 있다가 정전협정 체결로 포로 교환
을 할 때 돌아왔다는 것을 담담히 적어놓았다.
그리고 다시 보니 임익순은 고인이고, 그의 막내딸인 임진 씨가 유
고를 정리해 그 책을 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책은 백마고지란
이름을 지은 이가 임익순이고, 임익순은 백마고지의 영웅이라는 것도
보여주고 있었다. 존대 받을 자랑스러운 일과 부끄러운 것을 다 적었
다는 점에서 그 책은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회고록이었다. 때문에 기
사를 썼는데 그 인연으로 독일에 거주하다 한국을 방문한 임진 씨가
찾아와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가 이메일로 보내온 것이 이 책의 원고였다. 나는
통일지상론자다. 이 책은 독일 통일을 주장한 서독인을 ‘신연방주의
자’라고 해놓았던데, 그보다 더한 통일지상주의자라고 생각한다. 통
일은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강한 압력을 상당 기간 약화시켜줄 것으
로 전망한다. 압력이 약해지면 한국은 퀀텀 점프를 할 수 있다고 본
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맛본 대도약을 다시 한 번 해보기 위해 반드
시 통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총 한 방 쏘지 않았던 독일 통일
독일이 통일의 길을 걸은 1989년에서 1990년 사이 나는 초짜 기자
로 있었다. 폴란드에서 시작된 자유노조 운동이 동유럽 민주화를 가
져오더니,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며 유럽 냉전을 종식시키는 것을
목도했다. 4•19는 보지 못했지만 1986년의 6월 사태를 봤던 나는 ‘저
것이 바로 혁명이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혁명의 불꽃이 이웃 나라로
번져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보며 세계사에 기록된 대사건을 목격
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통일에 대한 꿈을 조금씩 지펴나갔다. 이 통
일은 삼국통일, 후삼국통일에 이은 세 번째 통일이니 무조건 한국 역
사에 기록된다. 기자인 나도 세 번째 통일을 지켜보며 그 기록을 남기
고 싶다는 생각을 키워간 것이다.
임진 씨는 독일 통일 24주년인 올해(2014년) 발간을 목표로 독일 통
일을 몸으로 겪은 24명의 독일인 회고담을 이메일로 보내주기 시작했
다. 그 글들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은 ‘역동적인 혁명이 어떻게 박제가
되는가’였다. 독일인들에게 통일은, 이렇고 저런 기억을 남긴 역사가
됐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6•25전쟁 10여년 후 태어났기에
어른들이 말하는 전쟁 이야기를 제법 들었다. 그런데 와 닿지 않았다.
많은 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어린아이에게 그 이야기는 호랑이 박제를
보고 호랑이의 위용을 느끼라고 하는 강요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저것을 경험해본 지금은 박제를 보고 A부터 Z까지는
아니어도 A부터 G까지의 호랑이는 상상할 수 있다. 호랑이의 힘과
기세(氣勢)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도 이빨과 발톱의 길이 등을 보며
강력했었음을 이해한다. 이 책의 원고들도 박제가 된 통일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들이 경험한 것 가운데 기억으로 남겨진 것만 기술했
으니, 내가 읽고자 하는 통일은 아니었지만 통일이 어떻게 다가오는
지는 살펴볼 수 있었다.
서구인, 그중에서도 독일인들은 객관화 훈련이 가장 잘 돼 있는 것
으로 보인다. 그런 그들이 소수가 주도한 전쟁에 따라 들어가, 화끈하
게 1•2차 세계대전을 벌인 것을 보면 ‘진짜로 객관성을 가진 국민인
가’ 하는 의심도 들지만, 일반적으로 보면 과장을 하지 않는 민족인 것
은 분명한 것 같다.
여러 편의 글 가운데 눈길을 끈 것은 ‘그것은 총 한 방 쏘지 않는 통
일이었다’라는 표현이었다. 젊은 시절 나는 동유럽 민주화를 혁명으로
봤지만, 명예혁명이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었다. 동독에서 생산한
‘트라비’로 애칭되던 트라반트 승용차가 서베를린으로 처음 넘어왔을
땐 환영의 박수를 받았는데, 불과 2년 후 폐차장에 몰려가 있었다는
표현에선 현실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격려를 받았던 오씨
(Ossi)들은 금방 2등 국민으로 몰렸지만, 독일은 2등 국민 중에서 총
리를 뽑아냈다. 그리고 그 총리가 이끄는 지금 유럽 최대의 강국 지위
를 누리고 있다.
콜 독일 총리가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독일 통일에 대한 동의를 끌어냈다는 것도 눈길
을 끌었다. 민초임이 분명한 필자의 눈에도 미테랑의 지지를 끌어낸
콜의 수완이 대단해 보였다. 통일은 큰 축이 기우는 것이다. 요인(要
人)으로 살고 있었든, 현장을 누비는 기자였든, 풍파와는 무관하게 내
일만 하는 민초였든 통일은 모두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24명
의 필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살기 위해 통일을 관찰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외부에 의존한다. 동맹은 우리를 지키는 안
보를 하는 데 아주 유용하지만, 통일을 이루는 데는 방해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적과 충돌하지 않
고 내가 잘났다는 것을 보이는 경쟁을 격화시켜 압도적인 우위를 차
지한다면, 적은 열패감과 확대된 모순에 사로잡혀 자멸할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손자병법』이 말하는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부전
이승(不戰而勝)의 길이다. 독일은 미국은 물론이고 동맹국이지만 까
칠한 이웃인 프랑스와의 관계도 개선해 부전이승으로 통일을 이뤘다.
우리도 독일과 같은 동맹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까칠한 이웃인 일본과
중국의 지지도 끌어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손자병법』은 부전이승을 하는 조건으로 압도적인 우위와 완벽에 가
깝게 적을 고립시킬 것을 요구한다. 싸우면 무조건 이길 것 같은 군사
력을 갖고 위엄을 가하면서, 적을 외교적으로 완벽히 고립시키고, 적
의 모순을 극대화하는 모략을 펼쳐야 적을 완전 굴복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굴복이라야 통일 후 저항이 거의 없다. 이러한 통일이
라야 적이 가진 자산을 바로 활용하는 통일을 할 수가 있다. 한 필자
가 말한 명예혁명, 명예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통일이 초래할 혼란은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도
이 책은 독일이 어떻게 ‘명예통일’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필자들은
전체를 보지 못하지만, 그런 이해를 갖고 읽어나가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짐작할 수가 있다. 임진 씨는 참 객관적인 사람이다.
처음 만남에서 메르켈과 박근혜 비교론을 들으면서 세상을 더듬어 이
해하는 그의 촉수가 상당히 세련돼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그가 자
기 이야기가 아닌 제3자들의 기억을 모아 통일담론을 내놓았다. 내
주장이 아닌 남의 기억으로 통일을 이야기하는 임진 씨의 기억 속에
는 인민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정전협정 체결로 돌아온 아버지에 대한
의식이 깔려 있을 것이다.
포로 석방으로 돌아온 후 임익순 씨는 다시 대령이 되었다. 그러
나 포로 출신임이 알려져 있기 때문인지 진급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5•16 후 전역했다. 박정희는 6•25전쟁 전 남로당 조직원으로 활동
하다 여순사건 후 추진된 숙군(肅軍) 수사에 걸려 사형을 선고받았다
가 감형돼 전역했었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 다시 현역으로 복귀할
수 있었고, 10년 후 5•16을 일으켜 역사적인 집권을 하게 되었다. 그
러한 박정희 정권이 간절히 명예회복을 바랐을 임익순 대령을 전역시
킨 것이다.
그런데도 임익순 씨는 평생 박정희 정부를 지지했다고 한다. 그것이
임진 씨에게는 큰 스트레스였다. 나 또한 그 시절을 살면서 반(反) 박
정희 의식을 갖는 것이 철저하게 옳다고 믿었으니, 그들의 부녀(父女)
갈등은 지극히 당연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버지로부터의 탈출을
생각한 것이 임진 씨로 하여금 독일 생활을 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
러한 막내딸이 아버지를 이해하며 아버지의 책 『내 심장의 파편』을 냈
다고 본다. 그리고 지금은 아버지와 같은 생각에서 이 책을 내놓았다
고 본다.
통일이 초래할 혼란은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은 “저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을 자주 되뇌인다.
이 책은 통일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묵묵히 보여준다. 그
렇다면 용기를 내어보자. 두려움을 용기로 바꿔 한국 역사에 길이 남
을 세 번째 통일을 이뤄보자. 임진 씨도 이 생각을 하며 이역만리에서
24명의 독일인을 선정해 글을 받고 번역하는 힘든 수고를 반복했다고
믿는다. 통일지상론자로서 임진 씨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이정훈
<신동아> 편집위원